장로교리 감리교리(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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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당당뉴스(DangDang News)에 공식 기고된 목사님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 매체사: 당당뉴스 (The DangDang News)
  • 발행일: 2012-04-24
  • 필자: 김기천 목사 (Rev. Kee Che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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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리 감리교리(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업데이트 2012.04.24 17:28

오늘 아침 식사를 같이 하시던 집사님 뜬금없이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차이를 물었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꽤나 궁금하셨던 모양입니다.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것이 훨씬 낫겠지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차이를 묻는 것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장로교의 기초는 ‘예정론’을 강조하던 칼빈의 가르침에 기초를 두었지요. 반면에 감리교나 성결교 등의 교리는 알미니안 주의의 중심인 ‘자유의지론’에 기초를 두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말입니다. 결국 칼빈주의냐 알미안주의냐란 질문은 예정론이냐 자유의지론이냐에 기초하지요. 예정론 또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강조한다면 또한 자유의지론은 인간의 결단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한 인간이 구원받고 저주받는 것조차 다 아시고 계신 것이지요.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구원받을 사람 지옥 갈 사람 미리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이지요. 결국 구원 사역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반면에 지유의지론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더불어 인간의 결단 즉 의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같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 나름대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결단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의 가르침을 보면 하나님께서 한 인간의 구원을 하시기 위해서 미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지요. 이것을 선행은총이라고 합니다.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이라는 사상은 사실 알미니우스(Arminius)가 가르친 것이지요. 그런데 미리 정해 놓은 이 길, 하나님의 은총을 인간이 의지적인 결단으로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아직 인간이 덜된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 믿음을 보고 의롭다고 인정(칭의, Justification)해주시는 것이고요. 이때 하나님의 칭의의 은총(Grace of Justification)이 함께 도우시지요. 이것은 단 일회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후로도 계속해서 덜된 인격을 다듬는 의지적인 결단이 요구됩니다. 이 단계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과정으로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고 하지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총(성화의 은총)이 함께 하셔서 한 인간이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돕지요. 성화의 마지막 마지막 단계가 영화(榮化, Glorification)이지요. 요한 웨슬리의 가르침을 보면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중심이긴 하지만 인간의 의지적인 순종이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구원론이지요. 뭐 좀 복잡하게 말하면 ‘신인 협동 구원론(Synergism)’이라고 하지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 이 두 주장의 대립이 최초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어거스틴 시대라고 봅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으로 교회 안에 이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예정론을 주장했던 어거스틴은 카르타고 회의(주후 418)를 소집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자유의지론을 주장했던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그리고 1000년이 지난 후에 예정론을 주장했던 칼빈의 입장을 옹호하는 고마루스(Gomarus)와 자유의지론을 주장했던 알미니우스(Arminius)의 논쟁이 터져 나옵니다. 고마루스는 알미니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지요.

문제는 성경을 뒤져보면 바울의 글들 안에는 예정론을 지지하는 말씀들이 많이 나오고 요한복음과 같은 요한의 글들을 보면 인간의 결단 즉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말씀들이 나오지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 둘 중에 어느 쪽이 맞냐 틀리냐?"라는 질문을 성경의 한쪽만 받아들이고 다른 쪽은 버리겠다는 말과 같지요. 성경에는 모두 들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둘 다 받아들이는 입장입니다. 집사님과 함께 새벽예배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하게 된 것을 두 가지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론 입에서 보면 우리끼리 우리의 의지만으로 식사자리가 마련된 것이지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지요. 별로 은혜스럽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이 자리를 계획하셔서 지금 집사님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아침 식사하는 이 자리와 지금 한 순간 한 순간이 감사할 따름이지요. 10년 전에는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지요. 바울은 서신을 기록할 때마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미리 택정하셨다고 자신있게 고백하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신앙은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자리에서 여전히 개입하고 계신다는 믿음과 고백 그것이 신앙생활이지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니까 나는 아무일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또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당신은 심지도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시는 분인 줄 알고 있습니다(마 25:24)"라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주인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며 꾸짖으셨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명령을 받은 종처럼 행동해야지요. 자발적인 의지로 결단해서 순종하는 행동이 있어야,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는 예정론적인 고백과 의지적인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교리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을 가르치려는 책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교리라는 칼을 만들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는 교회 역사를 보면 목을 잘라 죽이기까지 했지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순종하며 살라고 말씀을 주신 것이지 그것 가지고 네가 맞니 내가 맞니 하며 싸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가르침이라면 둘 다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만 맞고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면 성경의 큰 부분을 잘라내고 가르치는 이단이 되는 것이겠지요. 성경의 모든 내용을 논리적으로 맞출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 맘에 안 든다고 무식하게 잘라내는 횡포는 일삼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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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목사 "장로교리 감리교리(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해설 및 분석

1. 핵심 요약

김기천 목사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논쟁을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 더 나아가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대립으로 간결하게 설명한다. 그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 어느 한쪽만을 맹신하는 태도를 지양하며, 성경에 기록된 두 관점을 모두 포용하는 균형 잡힌 신앙 자세를 강조한다.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대한 인정과 인간의 자발적인 순종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삶임을 역설한다.

2. 신학적 인사이트

김기천 목사의 글은 오랜 역사를 지닌 신학적 논쟁, 즉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핵심 쟁점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목회적 관점에서 두 입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논의는 단순히 교리적 차이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성경적 균형을 추구하고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적용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1. 역사적 맥락: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논쟁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의 중요한 축을 이루어왔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예정론을 강조하는 반면,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옹호하며 조건적인 선택을 주장한다. 이러한 대립은 구원의 주체, 인간의 책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낳았고, 교파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김기천 목사가 언급한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은 이 논쟁의 초기 기원을 보여준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극도로 강조하여 하나님의 은총의 필요성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을 강조하며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무능력을 역설했다. 이러한 논쟁은 이후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논쟁의 토대가 되었다.

2.2. 철학적 맥락: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대립은 철학적으로 결정론과 자유 의지의 문제와 연결된다. 결정론은 인간의 모든 행동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관점인 반면, 자유 의지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철학적 논쟁은 인간의 본성, 도덕적 책임, 자유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김기천 목사는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신앙적인 관점에서 예정론과 자유 의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2.3. 신학적 분석:

2.4. 목회적 적용:

김기천 목사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대립을 교리적인 논쟁으로만 보지 않고,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적용을 위한 지침으로 제시한다. 그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성경을 교리적인 잣대로 재단하여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2.5. 비판적 고찰:

김기천 목사의 균형 잡힌 시각은 칭찬할 만하지만, 몇 가지 비판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김기천 목사의 글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논쟁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신앙생활의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몇 가지 비판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논의를 더욱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3. 결론

김기천 목사의 글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라는 복잡한 신학적 논쟁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면서도,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글은 교리적 논쟁에 매몰되지 않고, 성경 전체를 균형 있게 이해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조화롭게 강조하는 건강한 신앙의 길을 제시한다. 이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균형 잡힌 신앙관을 확립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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